08학번 새내기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좀 많아요. (속닥속닥)
by 동그리
패닉 2집 <밑> - 03. 강(江)

 가끔 속이 타는 날이 있다.  그래, 이런날은 담배를 한대 태워줘야지.  내 속 대신 활활 타주렴. 네가 없었다면 내 속이 다 타버렸을꺼야.  고마워.  콜록콜록.  그런데 당신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좀 쓰네.  콜록콜록.  참 우리도 질긴 인연이구나.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이런걸 운명이라 한다나.  내 운명이 당신밖에 없는것 같아서 좀 더 속이 쓰린것 같긴 하다.

 오랜만이다. 담배야 안녕.

 우리가 언제 처음 만났더라.  아, 그래 분명 그때부터였어.  雪花 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름만큼 참 예뻤던, 그리고 이름보다 더 차가워던, 그 아가씨와 이별하기 즈음부터.  그 아이는 항상 담배를 피울때마다 필터를 한번 깨물고 줬었지.  앙~ 하면서.  언젠가 내가 왜 그렇게 하냐고 물었을때, "이러면 나중에 네가 담배를 물때마다 내 생각을 할꺼 아니야." 라고 했었고, 덕분에 난 아직도 담배를 볼때마다 그 아이 생각이 나.  아마, 죽는 그 순간까지 잊을수가 없을것 같아.  요망한것.

 그 아이를 생각하면 '번지점프를 하다'도 떠올라.  이병헌이 이은주가 담배 멋있게 피는 남자가 좋다고 해서 담배를 피웠던 그 장면.  그 귀여운 장면이 난 왜 그리 슬프던지.  덕분에 난 '번지점프를 하다' 를 보면서 남들보다 한번 더 슬퍼할 수 있었어.  난 그 아이가 당신을 피는게 싫다고 해서 피웠었거든.


 난 왜 상대가 날 싫어하는 만큼 내 마음도 같이 식을거라고 생각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도 그렇지만) 난 참 어렸었고, 바보같았고, 밉상이었어.  아, 아무리 생각해도 부끄럽다.  그때의 나를 대신해서 사과할께.  미안해.  이 한마디가 그땐 왜 그리 어려웠었던지, 미안해.  네 작은, 그리고 꽉쥐었던 주먹을 잡아주지 못했던걸, 미안해.  파르르 떨리던 입술을 보면서도 입을 열지 못했던걸, 미안해.  가까스로 입을 겨우 열어놓곤 고작 담배연기만 마셨던걸, 미안해.  미안해서, 미안해.

 덕분에 이제 누군가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어.  아니, 사실 정확히는 미안해 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어.  이젠 반말보단 존대가 편하고, 진심보단 가식이 편하고, 만남보단 이별이 편하고, 둘 보다 하나가 편하고, 관심보단 무관심이 더 편해.  내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잊어가는것 같아.  그리고 그 사라진 마음속엔 검은 강물이 흐르고 있겠지.  그나마 남은 마음들도 아마 반쯤은 당신과 함께 타들어 갔을테고 반쯤은 연기와 함께 사그라졌겠지.


  지금 내가 이렇게 시덥잖게 살고있는게 담배 탓이라니.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라고 한다면 사실 할말은 없지만서도.  그래도 왜 그런거 있잖아.  왠지 새출발 하는 기분.  그래, 사실 덤테기 쓰고 있는거 맞아.  하지만 담배는 만병의 근원이라잖니.  원래 세상 사는게 다 그런거야.  토닥토닥.  게다가 당신은 요망하기도 하고.

 이제는 사라진 마음에 아쉬워하기 보다는 잃어버린 마음을 찾으려고해.  내 마음속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꺼야. 검은 강물 끝자락 어디즈음에 작은 섬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이 섬에는 꽁초따윈 버리지 않을테야.  금연이라고 큼지막하게 붙여두고 꾹 참아 볼테야.  지금 타고 있는 당신이 이제 마지막이야.

 잘가.  담배야 안녕.



 내 마음 속 강물이 흐르네. 꼭 내 나이만큼 검은 물결 굽이쳐 흐르네. 긴 세월에 힘들고 지칠 때, 그 강물 위로 나의 꿈들 하나 둘 띄우네. 설레이던 내 어린 나날도 이제는 무거운 내 길 위에 더 무거운 짐들 조금씩 하나씩 나를 자꾸 잊으려 눈물을 떨구면 멀리 강물 따라 어디쯤 고여 쌓여가겠지. 텅 빈 난 또 하루를 가고 내 모든 꿈들 강물에 남았네. 작은 섬이 되었네.

 설레이던 내 어린 나날도 이제는 무거운 내 길 위에 더 무거운 짐들 조금씩 하나씩 나를 자꾸 잊으려 눈물을 떨구면 멀리 강물 따라 어디쯤 고여 쌓여가겠지. 텅 빈 난 또 하루를 가고 내 모든 꿈들 강물에 남았네.

 작은 섬이 되었네.


1996. 09.
패닉 2집 - 밑
03. 강(江)



by 동그리 | 2009/05/13 23:27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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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고마저씨a at 2009/05/13 23:40
아... 패닉 2집은 명반이지요.. 특히.. 江은..
마음의 울림을 주는 그런 노래였다고 생각되요 ^^*

좋습니다~
Commented by 동그리 at 2009/05/14 00:06
맞아요. 제 어린 시절의 감수성을 어느정도 책임졌던 음반이라 더욱 애착이 가네요.

좋지요. :)
Commented by 페이페이 at 2009/05/14 00:17
강 정말 좋지요^ㅇ^
Commented by 시린하늘 at 2009/05/18 11:46
동글 간만~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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