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y 동그리
1) 결석한 이유
"언제부터였어요?" 4월 1일. 09시 25분. 여느때처럼 손을 흔들며 '안녕안녕' 하고, 여느때처럼 '다음에 봐요~' 하고 지나치려 했을때, 내 다리를 붙잡은, 아니 내 마음을 붙잡은. 아무말도 못하고 멍-하니 얼굴을 바라보게 하는. 한마디를 내게 건넸다. 그녀가. 2) 분명 그럴거야. 예를들어. 복도를 걷고 있는다고 치자. 복도를 걷고 있다. 뚜벅뚜벅. 그런 와중에 내 앞에 피사체가 하나 등장한다. 뭔가 짠! 하는 기분이랄까. 한 아가씨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팔랑팔랑. 하지만, 눈이 나쁜 - 그러면서 안경도 렌즈도 없는 - 나로선 누군지 파악이 쉽지 않다. 물끄럼. 그래 oo학과 o학년 A양이네. 파악완료. 'oo양 안녕~.' 인사를 한다. 가볍게 손을 흔들며.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인사를 할땐 손을 흔들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만. 그렇게 인사를 하곤 헤어진다. 종종종. 아무일도 없었던것 처럼. 3) 그랬었는데.... 힐끔 보고. 베시시 하고. 힐끔 보고. 베시시 하고. 힐끔 보고. 베시시 하고. 헉, 눈이 마주쳤네. 딴데 보는척 하고. 괜히 당황하고. 베시시 하고. 4) 그래, 사실은 아직도. 처음이었다. 이런 질문. 아니다, 처음은 아닌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비슷한 이야기는 있었더랬다. 뭐, 흔해빠진 질문. 특히 누군가를 마음에 품은게 눈에 확연히 띄는 사람들이 자주 받는 질문. "그래서 누구야?" 사교성 없고 매번 혼자노는 지난 1년간이지만, 사실 나도 몇번의 질문을 받았더란다. 물론 지나가는 말로, 혹은 장난으로 물었던것이 태반이겠지만. 소심한 아저씨의 마음은 철렁일 수 밖에 없다. '헉.' 하면서. 뭐, 그래도 아저씨의 연애에 누가 관심이나 있으랴. "형, 아무리 생각해도 25살 밑으론 안되요." 라며 진지하게 말했던 우혀니놈도 있었으니. 흑흑. 군대나 가버리라지. 흥. 하지만 개중에 있었다. 귀신같은 것들이. 7명의 입에서 6명의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5명은 틀리고 2명은 맞았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 상황. 뭐, 그래도 별 수 있나.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아냐아냐. 그렇지 않아. 난 사실 ooo이 좋더라. 하하하.' 뭐, 이렇게 넘기면 대게 넘어가기 마련. 그렇게 7번의 고비를 넘기고 반년즈음 지나 모두에게 잊혀질 무렵. 이젠 나도 포기하고 있었던 마음을 누군가 송두리채 들어냈버렸다. 5) oo을 oo한게 중요한게 아니라... "언제부터였어요?" 난 아무말도 못하고 얼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머리속은 바쁘게 굴러가고 있었지만 아무런 계산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당황하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래, 잘못 들었을거야. 설마 그럴리가 없지. "응? 뭐라고? 잘못들은것 같은데?" 하지만, 내 바램은 바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 작은 입술을 또박또박 움직이며 나온 말은 좀 더 정확했다. "그러니까아....oo을 oo한게 언제부터였나구요." 맙소사. oo이라니... (여기까지 와서 oo을 oo으로 밖에 쓸 수 없는 왕소심한 더블엑스A형의 심정을 조금만 이해해주자.). 약간의 시간이 지나 약간의 정신을 챙겼을 무렵. 내가 당황했던 정확한 이유를 알았다. 여기서 중요한건 oo이 아니었다. '언제부터' 라니. 대체, 넌 언제부터 알고 있던거야? 6) 어디로 갔을까. 예전부터 남에겐 있는데 나에겐 없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나는 잘 모르는 그런 부분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최근들어 하나즈음 알것도 같다. 그러니까 아마, 조악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피드백' 정도? 아냐. 궁금증? 관심? 대화 지속능력? 음. 요컨데 말하자먼 버튼을 눌러야 무언가를 말하는 곰돌이 인형이랄까. 아, 그래. 내겐 친밀함이란 단어가 없는 것...같다. 7) 그럼, 모두에게 무심한 남자는? 2008년 가을날. "오빠는 오며가며 아이들과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걸 한번도 본적이 없는것 같아요." "원래 내 여자에게만 다정하다며. 모두에게 다정한 남자,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며~" 8) 싫으면 시집가라지. "그럼, 넌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데?" "어어, 정말이었구나? 근데, 어쩌나. 그 아이는 오빠 싫데요. 맘에도 없데. 가망없어. 가망없어." Oh, my god. 하나님. 도대체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아, 부처님인가..... 어느샌가 나는, 아니 우리는 사대 1층 로비에 앉아서 500원하는 코코아를 홀짝거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놀림을 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난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와중에 묻지도 않았던 대답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9) 아직 1시간 남았다구요. "아마, 이때부터였죠? 그때 오빠가 그러더라.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였지. 근데, 걔가 그랬던거 알아요? 아니아니, oo이 말고. 그 있잖아 일케절케 생겨서 이런저런애. 응응. 걔. 걔도 그랬데요 오빠를. 몰랐죠? 몰라도 되요. 지금 딴 남자 둘이랑 양다리 중이야. 사실 작년까지만 했더라고 가망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에. 히히. 이젠 땡이야. 끝끝. 게임 오버. 버스하고 여자는 떠나면 잡는게 아니에요. 이제 몇달 있으면 서른살이면서 어린애 한명 가지고 뭘 그리 아쉬워해. 조만간 좋은 사람 생길꺼에요. 사실 내가 더 이쁘지 않아요? 나 어때요 나? 나 오빠 좋아해요. 아니, 사랑하는것 같아. 사랑. 음, 그래. 사랑해요." 사실 이제까진 뿜었다는 표현이 이렇게 담백하고 사실적인 관용어인지 몰랐다. 난 꽤 식어서 입에 가득 물었던 코코아를 힘차게 인대 로비에 뿜었다. "나를?" "응." 4월 1일. 10시 15분. 난 고백을 받았다. 그리고 난 이미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속에선 "나는 전세계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을법한 고백중에 꽤나 다이나믹한 고백을 받은 사람일거야..."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한가지 더 든 생각이 있다. "당신은 전세계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졌을법한 만우절 거짓말중에 꽤나 허무한 거짓말에 속는 사람일꺼야...." 라는 생각...이랄까. :P 라지만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길어서 아무도 보지 않을테지. ㅠㅠ. 아, 재미없는 만우절이여 안녕-.
|
|